어린 시절부터 24년 동안 거의 언제나 형제처럼 붙어 지냈던 두 친구가 헤어진 지 41년 만에 만나 하룻밤 동안에 나누는 대화가 소설의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이 간단해 보이는 소설의 배후에는 삶과 운명, 사랑과 진실에 대한 마라이의 깊은 인식과 성찰이 자리하고 있다. 존재의 심연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심성을 정확하게 꿰뚫고 묘사한 문학은 예로부터 시공의 제약을 뛰어넘어 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고 힘을 발휘했다. 주인공 헨릭은 어느 날, 쌍둥이 형제처럼 지낸 절친한 친구와 사랑하는 아내에게 기만당한 것을 안다. 존재를 뿌리까지 송두리째 뒤흔드는 이 갑작스러운 사건은 결국 세 사람의 인생을 파괴한다. 작가 마라이는 사랑과 우정이 빚어낸 비극의 원인과 비극 앞에 선 인간의 혼란과 갈등을 파헤치기 위해서 인간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여러 가지 존재론적인 문제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도르 마라이
산도르 마라이는 1900년 독일과 헝가리 문화의 접합지이며, 1차 세계대전 후 체코에 귀속된 캇사에서 태어났다. 마라이의 아버지 집안은 작센에서 이주한 독일 계통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헝가리어와 더불어 독일어를 말하고 배웠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어도 약간 말할 수 있었으며, 당시 중부와 동부 유럽의 시민 계층에서 대부분 그랬듯이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부다페스트는 당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진적인 변화의 징조가 뚜렷했다. 군주제에서 좌익공화국으로, 그리고 다시 우익 호르티 정부로의 변화. 마라이는 눈앞에서 “모든 것이 붕괴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헝가리를 떠나 라이프치히의 신문학 연구소에서 강좌를 수강한 다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옮겨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독일어로 기고하기 시작했다. 귀족의 작위를 받은 작센-메렌-헝가리 시민 가문에서 출생한 마라이는 독일과 헝가리 양국의 언어에 능통했다.
덕행이나 신의, 변함없음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이런 우정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신의를 기대하는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자신을 희생하는 신의 있는 친구와 똑같이 신의 없는 친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닐까? 상대방에게서 어떤 것도, 정말 어떤 것도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는 사리사욕 없음, 많이 줄수록 기대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간 관계의 진실한 내용이 아닐까? p143
일부를 받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 전부를 원하는 법이지
현재의 자기와 달라지고 싶은 동경, 그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인간의 심장을 불태우는 동경은 없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세상에서 차지하는 것하고 타협할 때에만 삶을 견딜 수 있기 때문일세. 현재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타협할 줄 알고, 또 이렇게 현명하게 굴어도 삶으로부터 어떤 칭송도 받지 못하는 것을 알아야 하네.p172
우리의 동경이 현세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을 참아야 하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거나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참을 수밖에 없네. 배반과 신의 없음도 참아야 하고, 자기보다 인품이나 지성이 뛰어난 사람이 있어도 참아야 하지. 이 가운데 마지막 것이 가장 어려운 과제일세
내적으로 묶여 있는 아주 가까운 사람을 어떤 이유에서든지 죽이기 위해 총을 겨누는 시련이 닥친다면, 틀림없이 몹시 끔찍할 게야.
우리 스스로 목숨을 잃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 마음을 불타오르게 했던 것. 이런 것은 다 띠끌 조차 못 되네.
우리는 정조를 요구하면서 과연 상대방이 행복하길 원하는 것일까? 상대방이 정조라는 것에 구속되어 행복할 수 없는데도 정조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일까?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경험이 많아도 타고난 본성이나 그 끈질긴 생각에 대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어.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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