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로맹가리가 1968년 단편 형태로 미국 "라이프"지에 처음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장편소설로는 1970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첫 출간 후 42년 만에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소개되었지만 ‘적대적 공생’이나 ‘정치적 올바름’, 인종적 편견 등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고민을 묵직하게 담고 있다. 그의 여느 소설처럼 이 작품에서도 로맹 가리는 자기 경험을 천착하지만, 자신에서 사회로, 그리고 인류로 시야를 본격 확장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960년대 미국사회에 대해서도 알 수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로맹가리
1914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14세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 니스에 정착했다. 법학을 공부한 후 공군에 입대해 1940년 런던에서 드골 장군과 합류했다. 첫 소설 [유럽의 교육]이 1945년에 비평가상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었고, 탁월하고 시적인 문체를 지닌 대작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같은 해 프랑스 외무부에 입성해 외교관 자격으로 불가리아의 소피아, 볼리비아의 라파스,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 체류했다. 1949년 [거대한 옷장]을 펴냈고, [하늘의 뿌리]로 1956년 공쿠르상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주재 프랑스 영사 시절에 배우 진 세버그를 만나 결혼하였고,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두 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1958년 미국에서 [레이디 L](프랑스판 출간은 1963)을 펴냈고, 1961년 외교관직을 사직, 단편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1962)를 발표했다. 만년에 이르러서는 [이 경계를 넘어서면 당신의 승차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1975), [여자의 빛](1977), [연](1980) 같은 소설을 남겼다. 1980년 파리에서 권총 자살했다. 사후에 남은 기록을 통해 자신이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그로칼랭](1974), [가면의 생](1976), [솔로몬 왕의 고뇌](1979), 그리고 1975년 공쿠르상을 받은 [자기 앞의 생]을 썼음을 밝혔다.
내가 거실에 들어서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현명한 행동이었다. 나는 딱 보면 표정이 드러나는 얼굴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나를 보기만 해도 냉기를 느끼기에 충분했을 거라는 얘기다. 악한 진영에도 있듯이 이 ‘착한 진영’에도 상황을 이용하는 자들과 개자식들이 있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나는 진 세버그의 재정 문제에 코를 디밀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곳에 온 뒤로는 여섯 명의 협잡꾼들과 영원한 악한들이 그녀의 두 가지 죄책감, 즉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기 때문에 가장 멸시당하는 존재임에 틀림없는 영화계 스타라는 죄책감과 원죄를 신격화한 루터파 교인이라는 죄책감을 갖고 놀며 최대한 이용하는 걸 지켜보고 있다.
1 _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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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_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