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재담꾼 이기호의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 제1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을 비롯한 여덟 편의 소설이 담겨 있다. 작가는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을 이야기로 보수해가면서 삶과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 또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색조를 유지하면서도 서사와 문장의 열기를 유연하게 다스리고 있다.
대학 본부의 임시직 남녀, 우직한 노총각 삼촌, 임용고시 준비생, 각막이식을 받을 전도사, 제자를 구명하려는 교수, 개명을 신청한 어머니와 그 아들, 현대판 노예, 제대한 백수 등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정쩡한 삶 속에서 허둥거리다 넘어지고 만다. 표제작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교원임용고시에 실패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 두려운 화자가 김 박사라는 인물과 상담을 주고받으며 전개되는데, 마지막에 김 박사가 누구인지 빈칸을 채워보라는 여백을 제시하는 독특한 형식이 돋보인다.
저자 이기호는 1972년 강원 원주에서 태어나, 1999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등을 펴냈고, 2010년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2013년 현재 광주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과 함께 소설을 쓰고 있다.
정서(情緖)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언제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사람은 스피노자였다. 그는 사람들의 결함과 어리석은 행동들을, 슬픔과 조롱과 한탄과 우울들을, 마치 선, 면, 물체처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도달한 결론은 '인간의 모든 정서에는 각각의 원인이 있다'는 것. 그것을 제대로 알기만 하면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는 것 등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참아내고 있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지금 참아내고 있는 그 무엇으로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독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죄의식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거절을 참아내는 사람들과 망상을 참아내는 사람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참아내기도 한다. 누가 어떤 괴물 같은 짓을 하더라도, 그것을 누가 참아내고 있는가, 누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하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는, 숨겨진, 또 하나의 눈금일 것이다.
행정동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김 박사는 누구인가?
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탄원의 문장
이정(而丁)-저기 사람이 나무처럼 걸어간다 2
화라지송침
내겐 너무 윤리적인 팬티 한 장
해설. 이야기의 경계를 넘어, 이야기되지 않는 삶을 찾아서_ 김동식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