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가 있었으나 항상 혼자나 마찬가지였던 어진은 지긋지긋한 빈집을 벗어나 결혼하여 시집에 가서도 홀로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 다시 길을 떠나 이복언니인 배수진을 만나지만 그녀마저도 결국엔 어진의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 그녀는 또다시 길 위에 혼자 남겨진다. 이 지긋지긋한 독거와 역마살의 반복이 우리들의 삶인가. 늘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다시 시작해야 하는 빈집의 나날이, 우리에겐 어쩐지 낯설지 않다. 모든 아버지들의, 모든 어머니들의 어쩔 수 없는 그늘이 이 소설엔 담겨 있다. 갈구하면 할수록 반대로만 나아가는 역설적인 인생사가 찬란하게 아프다.
김주영
1939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70년 「여름사냥」이 『월간문학』에 가작으로 뽑히고, 1971년 「휴면기」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으면서 문단에 나왔다.『객주』 『활빈도』 『천둥소리』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화척』 『홍어』 『아라리 난장』 『멸치』 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유주현문학상(1984)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93) 이산문학상(1996) 대산문학상(1998) 김동리문학상(2002) 등을 수상했다.
그때였다. 전혀 인기척이 없었던 가게 문 앞으로, 사십대 중반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가게 안에서 수족관을 탈출한 털게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얼른 보아도 보기 드문 비만증인 여자는 가게에서 뒤뚱뒤뚱 걸어나와 굼뜬 동작으로 길바닥의 털게 다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수족관을 겨냥해 팔매빌하듯 휙 내던졌다. 순식간에 수족관으로 되돌아온 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닥에 엎드려 있는 다른 게들의 등 위로 느릿느릿 가라앉았다. -p7
외로움이 발견하는 수많은 기능중에는 이미 퇴행되었거나 삭제되었던 신경계의 감응조직을 복원시키는 힘도 있는 듯했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집 안의 평범한 움직임들이 신기하게 보인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다. p18
그래서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감정과 혼란의 파괴로 이루어진 최악의 결합이라고 말활 수 있었다. 겉치레뿐인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모든 것이 가능했고 모든 것이 정당화되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괴멸되어버린 결과를 낳았다. p109
그런 어머니가 신호대기상태가 아닌,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삶의 본질과 맞부딪치는 공격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p290
-없음-